GM049
선산 지방의 학자이며 독립운동가 허왕산, 허방산의 상조인 태초당 허임(許恁) 선생의 간찰
◈ 크기(세로*가로) : 43.5*25.6cm
◈ 허임(許恁)
1782년(정조 6)∼1855년(철종 6). 조선 후기 유학자. 자는 경옹(敬翁)이고, 호는 태초당(太初堂)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부친은 허돈(許暾)이며, 모친은 철성이씨(鐵城李氏)이다. 1806년(순조 6) 향시에 장원을 하였으며, 1813년(순조 13) 증광시 진사 3등 16위로 합격하였다. 1835년(헌종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1818년(순조 18)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을 위해 상소했던 일이 문제가 되어 급제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 후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다.글씨를 잘 써서 전라북도 전주(全州)의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과 나란히 이름을 떨쳤으며, 고계(古溪) 이휘령(李彙寧)‧매촌(梅村) 금시술(琴詩述)‧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 허흡(許洽)‧허훈(許薰) 등이 편집‧간행한 4권의 『태초당집(太初堂集)』이 전한다. 문집 중에 주목할 작품으로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가 천주교를 탄압할 때 채제공을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한치응(韓致應)에게 보낸 상병산한공(上甹山韓公), 채제공의 관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홍시제(洪時濟)를 치하한 여홍참판시제(與洪參判時濟), 통서(通書)의 성기도(誠幾圖)에 대한 의문을 적어 유태좌(柳台佐)에게 써 보낸 상학서유공(上鶴棲柳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