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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030 홍가정진비전 부 의서자전(洪家定診秘傳 附 醫書字典) 홍가정진비전 홍가비전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5-08-31     조회 : 2,796  


PD030

홍가정진비전 부 의서자전(洪家定診秘傳 附 醫書字典) 홍가정진비전 홍가비전

보문출판사
1955(초판) 206페이지

181. 홍씨 집안의 치료 경험을 세상에 공개한 명의 홍순승 / 김남일

 

얼마 전 학창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냈던 홍학기 원장님(인천 홍일한의원 원장)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시민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사회 참여를 많이 했던 그에게서 그의 가계에 대한 정보를 적은 짤막한 메모가 담긴 파일을 받아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홍 원장님의 가계가 홍가정진비전(洪家定診秘傳)이라는 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며칠 전에 자료를 부탁했던 터였다. 파일의 내용은 홍학기 원장의 증조부인 홍순승(洪淳昇, 1889~1961)에 대한 것이었다. 홍순승의 집안은 현재 손자인 홍성헌(洪性憲)과 증손자인 홍학기(洪鶴基)를 비롯한 4인의 한의사가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홍 원장이 정리해준 파일을 바탕으로 홍순승의 생애와 의학 사상을 정리해본다.

홍순승은 고려의 개국공신 홍은열의 33세손으로 남양 홍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소석(小石), 고향은 경기도 가평군 천안리였다. 부친 홍종진[洪鍾振, 호는 석정(石汀)]은 조선 말기에 장례원전사보(掌禮院典祀補), 통훈대부(通訓大夫), 장릉참봉(長陵叅奉)을 지냈으며, 시문(詩文)을 무척 좋아해 많은 선비들이 그의 집을 오갔다고 한다. 홍종진의 문집으로 석정집(石汀集)이 있다.

부친이 워낙 시문을 즐겼고 집안을 드나드는 어른들도 학식이 높은 이들이 많았기에 홍순승은 한학을 쉽게 익힐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게 된다. 게다가 부친은 청렴할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한 치 걸러 두 치부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식구보다는 멀고 어려운 친척, 친지들을 먼저 살피고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부친의 삶은 홍순승의 삶에 커다란 지표가 되었다. 그가 한의학을 연구한 것도 이러한 집안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한의학으로 제세(濟世)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한의학 연구에 정진하여 고향에서 한지의생(限地醫生)이 된 뒤에 28세에 사촌형인 홍순필(洪淳泌, 대동인쇄주식회사(大同印刷株式會社) 사장, 대한문교서적회사(大韓文敎書籍會社) 감사역(監査役)을 역임)의 권유와 도움으로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 통의동에 행림한의원(杏林漢醫院)을 개설했다. 그는 경악전서(景岳全書), 의학입문(醫學入門), 동의보감(東醫寶鑑)등을 중요하게 여겨 몇 명의 선배들과 함께 한의학 연구를 계속했다.

그가 많이 활용한 처방은 육미지황탕가감방(六味地黃湯加減方), 사물탕가감방(四物湯加減方)이었고, 침구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엽침(葉鍼)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이다. 엽침은 홍순승이 개발한 침으로 경혈(經穴)에 자입(刺入)하지 않고 경혈자리를 잘 탐색하여 해당 혈 자리를 70~90회 꼭꼭 눌러 자극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자침의 효과를 배가할 목적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홍순승의 저술 홍가정진비전(洪家定診秘傳)1955, 1974, 19833차례에 걸쳐 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이 책에 '홍가(洪家)'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가전비방을 정리한 이 책의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 이 책의 제일 앞부분에는 '의해보벌(醫海寶筏)'이라고 쓴 김영훈(金永勳, 1882-1974)의 축문(祝文)이 나온다. 아마도 이 책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써준 것으로 보인다. 홍순승은 김영훈뿐 아니라 당시 한의계의 지도자였던 김장헌(金長憲), 채인식(蔡仁植), 박호풍(朴鎬豊), 홍성초(洪性初), 이완직 등과도 친분을 유지했다.

홍가정진비전의 서문에서 홍순승은 의약(醫藥)에 대한 지식이 투철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못 치료하여 사람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시속에 개탄하여 이 책을 짓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어서 '주의(注意)'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책의 처방을 활용하기에 앞서 오행상생(五行相生), 오행상극(五行相克), 오색(五色), 오미사시(五味四時) 등 원리를 기록한 앞부분을 먼저 심사숙고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홍순승은 모든 병은 기혈(氣血)의 편차에 의해 나타나는데 그 처소를 좌우(左右)로 나누어 병증을 파악하고자 했다.

"좌부병(左部病)은 혈허(血虛)라고도 하고 음허(陰虛)라고도 하니 물론모병(勿論某病)하고 좌맥(左脈)이 약()하고 우맥(右脈)이 실()한 법()이요."('좌부병'에서), "우부병(右部病)은 기허(氣虛)라고도 하고 양허(陽虛)라고도 하고 우맥(右脈)이 약()하고 좌맥(左脈)이 실()하니 보양지재(補陽之材)로 위주(爲主)하되 우병(右病)을 치료하여 병이 낫더라도 우변(右便)으로 넘기도 하나니 이런 경우에는 다시 좌편병(左便病)을 치료(治療)하라."('우부병'에서) 등이 그의 주장이다. 홍순승의 이러한 치료법은 '좌우론(左右論)'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치료방안이다. 현실적으로 인체의 외형과 기능은 좌우의 균형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며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차이가 진단학적 판단의 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한의 진단학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병명을 표기할 때 서양식 질병 표기법을 많이 따르고 있는데, 이는 서양의학에 대한 저자의 높은 이해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뒷부분에 실린 보유잡방(補遺雜方)은 임질(淋疾)의 대황환(大黃丸), 팔각충(八角蟲)에 쓰는 백부근탕(百部根湯), 촌백충(寸白蟲)에 사용한 가미곽향정기산(加味藿香正氣散), 안약(眼藥)인 결운산(決雲散) 등 당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처방을 보충한 것이다. '의서자전(醫書字典)'은 의서에 많이 나오는 글자들을 찾아보기 편하게 옥편의 형식으로 첨부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 시기를 한의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사회활동과 학술활동을 한 홍순승의 홍가정진비전은 한의학을 전업으로 하는 한의사 집안에서 대대로 축적한 경험방을 정리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아울러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시기 동안의 한의학 연구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근현대 한의학의 발전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씨 집안의 치료 경험을 세상에 공개한 명의 홍순승 (근현대 한의학 인물실록, 2011.10.26, 도서출판 들녘)

최고관리자 (17-02-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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