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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D127 홍익의등(弘益醫燈)
  
 작성자 : 최고관리자
작성일 : 2015-11-25     조회 : 1,681  


KD127

홍익의등(弘益醫燈)

175. 홍익의등으로 한의계의 등불이 되고자 했던 비운의 한의학자 임홍근 / 김남일

 

19691115일 자 <한의사협보>에는 매우 슬픈 조사(弔辭)가 기록되어 있다. 한희석(韓熙錫)'오호(嗚呼)! () 동지(同志). 그대의 영전(靈前)에 우노라'라는 글이 그것이다. 이글은 서울 아현동 고개에서 홍익한의원(弘益韓醫院)을 운영하면서 한의학의 학문적 연구에 매진했던 임홍근(林弘根, 1926~1969)이라는 뛰어난 한의사가 간암으로 44세에 요절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글이었다.

임홍근은 당시 한의사협회 중앙위원과 대한한의학회 이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여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던 인물로서 특히 학술에 뛰어나 한의계 논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한희석은 이 무렵 구성된, 한의학 고전을 중심으로 학술을 정리하기 위한 모임인 한방의우회(漢方醫友會)의 부회장이었다. 한희석은 이 모임이 시작되기 5일 전에 임홍근 원장이 서거한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한희석이 안타깝게 여겼던 것은 젊은 임홍근이 가지고 있었던 무한한 잠재력과 열정이었다.

임홍근은 1969215일에 국제한의학연구원(國際漢醫學硏究院)의 이름으로 홍익한의약출판사(弘益漢醫藥出版社)에서 홍익의등(弘益醫燈)이라는 학술서적을 간행한다. 국제한의학연구원과 홍익한의약출판사는 임홍근이 설립한 학술단체와 출판사로, 임홍근은 이들 단체를 기반으로 학술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다. 홍익의등은 이들 단체의 최초의 학술적 성과물이기도 했다.

편저자 임홍근은 홍익의등의 발간사에서 "불후(不朽)의 선철의학(先哲醫學)인 한의학에 유의(留意)하시는 강호제현(江湖諸賢)과 후진(後進)을 위하여 의학을 탐색하는 데에 등화지역(燈火之役)의 일우(一隅)를 감당할 수 있다면 행막과어차의(幸莫過於此矣)이니라."라고 이 책의 목표를 밝혔다. 이어서 허송암(許松菴)의 찬사, 동아한의원장 유장환의 추천문, 서울 정의원(鄭醫院) 의사 정상균(鄭尙均)의 추천문, 허송암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채워져 있는 내용은 황제내경소문해제(黃帝內經素問解題), 팔십일난주석(八十一難註釋), 맥경(脈經), 한방진단(漢方診斷), 상한론(傷寒論) 중의 음양(陰陽), 결혼(結婚)의 조건(條件), 본초칠방(本草七方), 한약론(漢藥論), 침구이십경맥(鍼灸二十經脈), 비요방(備要方) 등이 위주이며, 중간 중간에 녹크 란(), 웅담의 공()과 진가식별(眞假識別), 한양병명대조고(漢洋病名對照考), 한방보급상(漢方普及上)의 긴급문제(緊急問題), 양방진단학총론(洋方診斷學總論) 등과 같이 당시 한의사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삽입하여 놓았다.

특히, 자신의 경험의안(經驗醫案)'홍익치료실(弘益治療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개하고, 자신의 의설(醫說)'홍익의설(弘益醫說)'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개하고 있어서 현대 한의학의 의안(醫案)과 의설(醫說)을 연구하는 데에 값진 자료를 남겼다.

그가 이러한 서적을 낸 것은 한의학의 본령을 다룰 학술서적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했기 때문이다. 당시 의림, 대한한의학회지등이 연이어 나오면서 학술이 진작되어 체계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었고, 임홍근이 이를 실천한 것이다. 임홍근은 이 책을 일회성으로 간행하고 끝내지 않고 연결성을 가진 총서(叢書)의 형식으로 이어가고자 책의 앞머리에 '한의학총서(漢醫學叢書) 제일집(第壹輯)'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하지만, 2호가 채 나오기도 전에 서거하고 말았다.

임홍근은 1968년에 한약의 고체화(固體化) 문제를 다루어 여론을 환기하기도 했다. <한의사협보>를 통해 한약의 탕전(湯煎)이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잘 맞지 않기에 고체화하여 복용을 편리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휴대의 편리, 인적동원의 감소와 시간적 절약, 정신적 부담과 불편의 감소, 장기투약의 편리, 조제의 편리, 여행이나 수업 중에도 편리 등의 6가지 편리한 점을 들어 한약의 제형 개량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이러한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한약제재의 제형 변화에 대해 논의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19693월에 나온 대한한의학회지(大韓漢醫學會誌)에는 '삼초론(三焦論)'이라는 글을 게재하여 삼초에 대한 학술적 정리를 시도했다. 이글에서는 삼초에 대한 역대 의가의 학설을 총망라하여 설명하고 있고, 덧붙여 삼초를 서양의학과 연계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임홍근은 1969913일에 한의사협회 주최로 중앙회관에서 있었던 한의학 저술편저출판 합동기념식에서 저술공로자로 표창장을 받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홍익의등으로 한의계의 등불이 되고자 했던 비운의 한의학자 임홍근 (근현대 한의학 인물실록, 2011.10.26, 도서출판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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